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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 없는 집
by 윤솔
“ 주말부부라는 말은 있어도 주말가족이라는 말은 없다. 주말에만 만나더라도, 혹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더라도 가족은 끈끈히 이어져 있는 존재라는 걸 의미하는 것 같다. 나는 가족이라면 반드시 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가족은 떨어져 살 때 서로 더 좋을 수 있다. 저마다의 가족 형태, 저마다의 행복, 저마다의 불행에 대해 관심이 많다. 윤솔 작가의 『엄마아빠 없는 집』은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나의 상상으로 개진하였다. ”
김유담
주말의 기록
김유담
엄마, 아빠는 주말부부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아빠는 세종시에서 일했고, 금요일 밤마다 화성시에 있는 우리 집으로 왔다. 금요일 저녁, 우리 가족은 식탁에 둘러앉아 피자를 먹고 있었다. 아빠는 피자에 핫 소스를 듬뿍 뿌리면서 피자가 너무 느끼하다고 불평했다. 본인이 주중에 세종시에서 일하다가 주말마다 화성시로 오는 건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대접이 너무 소홀하다고 투덜거렸다.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빠?”
“세종은 조선 시대 왕이고 화성은 태양계에 있잖아. 주아야 그러니까 아빠는 조선 시대에서 우주로 날아온 거야.”
아빠는 자신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껄껄 웃었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 중에서 아빠 혼자 웃고 있었다. 나는 내 옆 자리의 엄마와 맞은편에 앉은 오빠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보았다. 오빠는 무표정하게 피자를 뜯어 먹고 있었고, 엄마는 입맛이 없다면서 피자를 거의 먹지도 않은 채 맥주만 홀짝였다.
식구들이 아무 반응이 없자 아빠는 맥이 빠진다는 표정을 지으며 엄마에게 못마땅한 말투로 말했다.
“입맛이 없을수록 밥을 제대로 챙겨 먹어야지. 피자 쪼가리가 뭐냐, 너는 일주일 만에 집에 온 남편한테 제대로 된 밥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은 안 드나 봐?”
“당신은 내가 집에만 있는 사람인 줄 알아? 회사 다니면서 애들까지 챙기는 게 보통 일인 줄 아냐고. 당신은 본인 입 하나만 챙기면서 살아서 몰라. 나는 일주일 내내 시달리다가 금요일 밤이 되면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이 녹아버릴 것 같아. 너무 피곤하다는 소리야.”
엄마와 아빠의 말다툼이 시작되자 오빠의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오빠는 급하게 피자를 입안에 꾸역꾸역 집어넣고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방으로 갔다. 나는 오빠를 쫓아가 방문을 두드렸지만, 이미 문은 잠겨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주말에만 만났고, 주말마다 싸웠다. 매일 만나지 않아서 그나마 덜 싸우는 걸까. 그렇다면 주말에도 만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내가 오빠에게 이런 생각을 말하자 오빠는 초등학교 5학년인 내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인 오빠는 그저 자기 살길을 찾기 바빴다. 오빠는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작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문예창작과가 있는 예술고등학교에 가려면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며 방에 틀어박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오빠를 대견해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알고 있다. 오빠는 이 집이 싫어서, 가족들을 떠나고 싶어서 기숙사가 있는 예고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주말에만 만나는 주말부부였다가 3개월 전부터 주말에도 서로 보지 않게 됐다. 내 의견을 받아들여서는 아니고, 엄마와 아빠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엄마는 금요일 밤에 우리에게 저녁을 차려준 뒤, 정작 자신은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짐을 싸서 집을 나갔다. 엄마가 설거지도 내버려두고 급하게 나가곤 했기 때문에 저녁을 먹은 후 오빠와 나는 설거지 당번을 두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오빠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아빠가 캐리어를 든 채로 집에 들어왔다. 엄마와 아빠는 같은 방을 썼고, 같은 침대를 썼다. 하지만 각각 다른 시간에 그곳에 머물렀다. 엄마는 주중에, 아빠는 주말에 안방을 차지했다.
아빠, 엄마의 물건도 이 집에 그대로 있었다. 화장대 위에는 엄마의 고데기와 아빠의 면도기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안방 욕실에는 두 개의 칫솔이 벽면에 사이좋게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현관에 아빠의 운동화와 슬리퍼가 놓여 있기도 해서 이 집에 친구들이 놀러 와도 이상하다는 낌새를 전혀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거실 액자 속의 가족사진처럼 단란한 가족으로 보일 거라는 사실이 서글프면서도 안심이 됐다.
어느 토요일 오후, 아빠는 안방에서 낮잠을 자는 중이었고, 나는 혼자 거실에서 <런닝걸> 재방송을 보다가 심심해져서 오빠 방문을 두드렸다. 책상 앞에 앉아서 등을 보이고 있는 오빠에게 다가가 물었다.
“오빠, 아빠랑 엄마는 주말에만 만나서 주말부부였잖아. 그럼 이제 주말에도 만나지 않는 거니까 부부가 아닌 거야?”
오빠는 귀찮다는 손짓을 하며 나가라고 했다. 오빠는 무척 두꺼운 책을 펴놓고 있었다.
“우와 이게 뭐야?”
오빠가 책 표지를 보여줬다. 양산을 쓴 귀부인 그림 아래에 ‘안나 카레니나’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안나 카레니나? 이게 누구야?”
“주인공 이름.”
“되게 두껍네. 오빠 이거 다 읽어야 해?”
“응, 작가가 되려면 이 정도는 읽어야 한다고 했어.”
“누가 그래?”
“다른 책에서 봤어.”
“엉터리, 그런 게 어디 있어? 좋아하는 걸 읽고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되는 거지.”
“그건 누구 말이야?”
“그냥, 내 생각이야.”
나는 오빠에게 기운 내라는 의미로 어깨를 한번 토닥여주고 거실로 나왔다. 안방 문을 빼꼼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침대에 누워 있던 아빠가 사라지고 없었다. 현관에 있던 아빠의 운동화도 없었고, 점퍼도 없었다.
식탁 위에 5만 원짜리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저녁을 시켜 먹으라는 뜻인 것 같았다. 나는 입을 삐쭉였다. 점심도 중국 음식 시켜 먹었는데. 예전에 아빠는 엄마에게 주말마다 배달 음식을 너무 자주 먹는다고 타박하더니 이제는 주말 내내 우리에게 배달 음식만 먹으라고 했다.
오빠와 저녁으로 치킨을 시켜 먹고, 남은 돈으로 편의점에 가서 과자를 잔뜩 사 왔다. 오빠와 나는 과자를 먹으며 드라마를 봤다. <대답하라 2998>이라는 인기 드라마였다. 드라마 속의 가족들은 밥상을 펴놓고 같이 밥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울적해졌다.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아빠에게 전화를 여러 번했지만 받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지만, 엄마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깜깜한 창밖을 보니 갑자기 무서워졌다. 아빠가 이대로 영원히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엄마까지 집에 오지 않는 건 아니겠지? 나는 오빠를 졸라 같이 아빠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오빠와 동네 주변을 한참 뒤진 끝에 아빠를 찾아냈다. 아빠는 우리 아파트 단지 놀이터 구석에 놓인 벤치에 혼자 앉아 팩 소주를 마시면서 핸드폰으로 야구를 보고 있었다.
“아빠, 거기서 뭐 해요?”
“응, 주아야. 주환이도 왔구나. 아빠 지금 야구 보는 중이야. 아빠가 응원하는 팀이 오늘 준결승전 경기를 펼치거든.”
“그럼 집에서 보면 되잖아요. 내가 드라마 안 보고 양보할게. 집으로 가요.”
아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빠는 여기에서 혼자 보고 싶어. 그냥 좀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래. 먼저 들어들 가렴. 이거 보고 아빠도 들어갈게. 주환아, 동생 데리고 집에 가 있어라.”
나는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놀이터를 돌아 나왔다. 아빠가 어디 있는지 확인했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나도 어렸을 때 놀이터에서 혼자 더 놀다가 들어간다고 떼를 쓴 적 많았으니까, 놀이터에 더 있다가 오겠다는 아빠를 말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집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내가 오빠에게 물었다.
“아빠, 괜찮겠지?”
“뭐가?”
“저렇게 혼자 두는 거.”
“내버려둬. 아빠는 혼자인 게 좋다고 하잖아. 혼자 팩 소주 마시면서 야구 보는 게 아빠의 행복인가 보지. 아니면 아빠 나름의 불행을 견디는 건지도 몰라.”
“행복? 불행? 오빠 그게 무슨 소리야?”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오빠는 내 말에 제대로 대답하는 대신 긴 문장을 읊었다. 아까 읽고 있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라고 했다. 나는 오빠에게 다시 물었다.
“오빠 그럼 우리 가족은 불행한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남들과 비슷한 가정은 아닌 거 같아. 가족들끼리 같이 모여서 밥 먹고, 여행도 가고…… 우리는 그런 행복한 가정이 아닌 거잖아.”
오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몇 걸음 더 걷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걸음을 멈췄다.
“아니, 우린 불행한 게 아니야. 우리는 그저 희귀한 가족이야.”
오빠가 말했다. 오빠는 자신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 뜻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나도 왠지 그 말이 좋았다. 희귀, 그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오빠에게 다가가 손을 힘주어 잡았다. 오빠는 약간 징그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 손을 놓지는 않았다. 우리 남매는 서로 손을 잡은 채 집 쪽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