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반장은 잘 지내고 싶다

 

by 천민재

2020_wce_06_천민재_반장은 잘 지내고 싶다.jpg

“ 『반장은 잘 지내고 싶다』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잘 지내길 원하지. 그리고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좀 부끄러웠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다는 뜻을 나 혼자 잘 지내길 원하는 의미로 받아들인 철없는 어른이 된 것 같아서. 이러니까 학창 시절에 반장을 한 번도 못 했구나, 라고 반성하며 이 글을 썼다. 이 반장이 지금 어디에 있든 거기서 잘 지내기를, 친구들과도 계속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고수경

 

​부반장도 잘 지내고 싶다

 

고수경   

   교실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잘나가는 애가 조용한 애를 놀리며 웃음거리로 삼았고 아이들은 모두 잘나가는 애에게 동조했다. 체육 시간에는 다들 조용한 애와 같은 팀을 하기 싫어했다. 조용한 애는 팀이나 조를 짤 때 가장 마지막에 남는 한 명이었다.

   부반장은 사실 그 애를 볼 때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특히나 친구들이 야, 너 얼마 주면 쟤랑 놀 수 있냐, 하고 뒤에서 킥킥거릴 때. 이래도 되나, 이건 좀 심하지 않나, 하고 찝찝해했다. 바로 받아치지 않고 어정쩡하게 웃었더니 바로 타깃이 됐다. 이 새끼 쟤랑 놀고 싶은가 봐. 맞지. 맞네. 야, 가서 놀자고 해라. 부반장은 욕설을 내뱉었다. 미쳤냐? 1분에 10만 원 주면 생각해본다. 아이들이 크게 웃었다. 그 순간 그 애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부반장은 그 애의 눈빛을 기억했다. 이건 부모님도, 선생님도 모르는 일이었다. 부반장을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부반장은 그 애의 눈빛이 생각날 때마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판도를 뒤집은 것은 반장이었다. 닷새 전인가 엿새 전부터 반장이 그 애를 같은 팀에 끼워주기 시작했다. 장난인 척 툭 치고 가는 아이들의 손도 막아섰다. 그러자 역시나 잘나가는 애를 비롯한 시끄러운 애들 몇 명이 반장을 놀렸는데 반장은 개의치 않았다. 부반장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면 안 될 텐데. 반장도 그 애처럼 될 거야.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 반장은 오히려 그 애들 중 몇몇을 지목해 비슷한 농담이나 장난으로 맞받아쳤다. 불시에 반격을 당한 아이들은 어, 어, 하다가 아무 말도 되돌려주지 못했다. 주변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조용한 애는 더 이상 놀림거리가 되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그 애에게 말을 거는 아이들도 생겼다. 잘나가는 애와 그 무리는 가끔 반장이나 조용한 애를 아니꼬운 시선으로 보기는 했지만 그게 다였다. 부반장은 혼란스러웠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잘된 일이긴 하지만…… 반장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억울하기도 했다. 부반장도 그 애를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반장이 그 애에게 잘해주기 훨씬 전부터. 부반장은 상상했다. 자신이 반장보다 먼저 그렇게 했다면 어땠을지. 답은 금방 나왔다. 아이들이 놀리는 걸 맞받아치지 못했을 것이다. 얼굴이 벌게져서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미쳤냐고 되물었겠지. 바로 일주일 전에 그랬듯이.

   다시 말하면, 부반장은 어차피 반장처럼 할 수 없었다. 반장은 그런 사람이고 부반장은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면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건 단순히 착하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럼 어떤 문제인가? 그것도 어려웠다. 부반장은 이건 굉장히 복잡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반장은 착해서 그럴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은 나빠서 그러지 못했던 것도 아닐 거라고.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잘나가는 애의 무리는 나름대로 뻗대고 다녔지만 예전 같지는 않았다. 이제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이는 반장의 말에 더 웃고 반장을 더 좋아했다. 부반장의 친구들은 반장 앞에서는 몸을 사리면서 잘나가는 애의 무리에게 더 친근하게 굴었다. 부반장은 점점 그 애들에게 싫증이 났다. 현재 교실의 대세는 반장을 따르고 있었고, 누가 봐도 반장 쪽이 선하고 정의로운 쪽이었다. 그 대세에 합류하기만 하면 이전처럼 마음 한구석이 찝찝해질 일도 없었다. 그러나 부반장으로서는 저쪽 무리와 지금 친구들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선하고 정의로운 것이 뭉쳐 다닐 친구를 만들어주지는 못하니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가, 소풍에서 같이 사진 찍을 친구가 많은 사람이 되고 싶은가, 하면 누구나 후자를 고를 것이다. 좋은 사람은 나중에도 될 수 있다. 하지만 친구는 오늘 당장, 내일과 모레, 매일매일 필요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친구들에게서 웬 그림을 넘겨받았을 때 부반장은 그냥 웃었다. 반장과 조용한 애의 이름이 적힌 캐리커처 사이에 하트를 그려놓은 그림이었다. 잘나가는 애가 그린 그림이 그 무리의 손을 떠돌다 부반장의 친구들에게도 들어왔고 가장 나중에 받은 사람이 부반장이었다. 반장은 부반장의 책상에 놓여 있는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거 내 거 아닌데. 부반장은 하마터면 그렇게 말할 뻔했다. 그러나 입을 열 틈도 없이 반장은 제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뭐야, 재미없어.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부반장도 동의했다. 점심시간이 어서 끝나고 졸린 수학 시간이 시작돼서 이 교실에서 떠드는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비 종이 치기 직전 교실을 찾아온 건 수학 선생님이 아니라 옆 반 애였다. 너희 반 반장이랑 부반장, 너희 담임이 오래. 부반장은 부반장이 된 것을 진심으로 후회했다. 반장 앞에 거추장스러운 글자 하나가 붙어서 반장만큼 멋진 이름도 아닌데 반장 옆에 붙어 다녀야 하는 부반장. 어떤 경력도 되지 않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부반장. 아이들은 반장은 반장이라고 불렀다. 반장! 반장! 선생님도 반장아, 우리 반장아,라고 부르곤 했다. 그런데 부반장은 이름이나 별명으로 불렸다. 부반장이 부반장인 걸 기억하는 건 자신뿐이었다. 혹은 지금처럼 반장을 따라 어디론가 갈 때나.

   조금 전의 일이 신경 쓰여서 부반장은 반장과 두어 걸음 떨어져서 걸었다. 앞서 걷는 반장의 표정은 무심했다. 벌써 다 잊어버렸을지도 몰랐다. 시끌벅적한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에는 주변이 한적했다.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전에 부반장은 말하고 싶었다.

   “야, 반장. 그거 내가 그린 거 아냐.”

   반장이 흘끗 돌아보았다.

   “알아.”

   그리고 다시 걸었다. 부반장은 걸음을 재우쳐 반장 옆에 따라붙었다. 그리고 한결 가벼운 말투로 떠들었다.

   “진짜 구리지 않냐? 걔네 완전 찐따들이잖아. 나도 걔네 그냥 불쌍해서 놀아주는……”

   반장이 멈춰 섰다. 몇 걸음만 더 내려가면 교무실이 있는 2층 복도였다. 영문을 모르고 따라 멈춰선 부반장에게 반장이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거야?”

   갑작스러우면서도 목적어도 없는 질문이었다. 그러니 뭘 어떻게 해,라고 되물어야 하는데 부반장은 입을 벌리고만 있었다.

   “다른 애들은 안 그러는데 너는 항상 이랬다저랬다 하더라. 아까도 그 그림 보고 웃어놓고 지금은 안 그런 척하잖아.”

   반장은 장난을 거는 것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에 받아칠 말은 많았다. 내가? 언제? 아닌데? 안 그랬는데? 하고 잡아떼거나, 그게 뭐? 이랬다저랬다 하면 안 되냐? 난 이랬다저랬다 할 건데 어쩔래? 하고 적반하장으로 나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부반장은 어느 쪽을 택할지 고르기가 어려웠다. 자신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기운을 먼저 느꼈기 때문이다.

   “궁금해서 그래. 너는 뭘 어쩌고 싶은 건지.”

   반장이 재차 물었다. 계단참 위아래 너머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음이 들려왔다. 부반장은 입안이 말랐다. 이제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그들은 교무실에 가야 하고 수학 시간에는 늦으면 안 되는데. 그런데 반장은 부반장의 대답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부반장은 겨우 입을 열었다.

   “나는 그냥…… 잘 지내고 싶어.”

   “누구랑?”

   누구랑? 부반장은 반장의 물음이 어이없었다. 당연히 친구들이랑도 잘 지내고 싶고, 잘나가는 애들이랑도, 반장이랑도 잘 지내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나머지 다른 애들과 그 조용한 애랑도. 같은 교실 안에서 척지며 지내고 싶은 애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만약에, 그중의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부반장은 할 수 없이 다른 애들보다는 제 친구들을 고를 것이다. 조용한 애보다는 잘나가는 애들과 잘 지내고 싶은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아이와 잘 지내는 게 불가능하다면 부반장이 선택할 아이들은 정해져 있었다. 침묵 끝에 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너는 누군가랑 잘 지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네가 잘 지내고 싶은 거구나.”

   “뭔 소리야? 잘 못 지내고 싶은 애도 있냐?”

   “그러니까, 넌 그게 제일 중요한 애라고. 네가 잘 지내는 거.”

   반장은 그대로 돌아서서 걸어가버렸다. 부반장은 서둘러 반장을 쫓아갔다. 같이 가야지, 이 자식이. 선생님이 반장이랑 부반장이랑 같이 오랬는데, 나는 부반장인데. 그러면서도 부반장은 반장의 말을 되새겼다. 다른 애들과 잘 지내는 게 중요한 것과 내가 잘 지내는 게 중요한 것의 차이를. 어쨌든 반장은 다른 애들과도 잘 지내고, 자기 자신도 잘 지내는 애고, 부반장도 그러고 싶을 뿐이었다. 부반장은 이제 궁금한 게 하나도 없다는 듯 앞만 보고 걷는 반장의 뒤통수를 보며 궁금해했다. 그게 그렇게 다른지. 자신과 반장은 왜 이렇게 다른지에 대해서.

   교무실에 다다랐을 때 부반장은 말하려고 했다. 사실은 자신도 다들 그 애에게 너무한다고 생각했고, 마음속으로는 이게 나쁜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그러나 자신은 반장과 다른 사람이고, 어떻게 다른지는 잘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너무나 다른 사람이어서 반장처럼 하지 못했던 것뿐이며, 마음만은 반장의 행동에 동의하고 있다고. 이런 말들을 하기 위해서 부반장은 반장의 어깨를 툭 치며 야, 하고 말을 걸었다. 반장이 교무실의 문을 열며 거기에 적힌 문구를 가리켰다. 정숙하세요. 부반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반장이 방금 자신을 본 눈빛을 떠올렸다. 그러자 정숙하지 않아도 되는 어디에서도 부반장은 이런 이야기를 반장에게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bottom of page